[호남도민신문]행정의 얼굴이 사람에 따라 바뀐다면 그곳은 더 이상 공공의 영역이라 부를 수 없다. 법과 원칙이 기준이 돼야 할 공무원의 자세가 ‘누가 민원을 제기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순간, 행정은 공정성을 잃고 눈치 보기로 연명하는 조직으로 전락한다. 시민들이 분노하는 지점은 불친절이 아니라, 같은 제도 아래에서 전혀 다른 대우를 받는 현실 그 자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정의 영향을 받는다. 말투가 거친 사람 앞에서 긴장하고, 조용한 사람에게는 무심해질 수 있다. 공무원도 예외일 수는 없다. 약간의 호불호, 순간적인 태도의 흔들림까지 모두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약간’이 반복되고, 누적되고, 결국 당하는 사람에게는 명백한 차별로 인식될 때다.

행정은 감정 노동의 현장이지만 동시에 철저히 중립적이어야 할 공적 영역이다. 공무원에게 요구되는 중립은 정치적 중립만이 아니다. 사람을 가리지 않는 태도, 배경과 목소리의 크기에 흔들리지 않는 자세 역시 중립의 핵심이다. 상대에 따라 설명의 깊이가 달라지고, 처리 속도가 달라지며, 가능과 불가능의 기준이 미묘하게 바뀐다면 그것은 단순한 인간적 실수가 아니라 역할의 실패다.

문제는 이런 차이를 겪는 쪽에서는 그것이 ‘약간’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같은 민원을 냈는데 누군가는 친절한 설명과 대안을 받고, 누군가는 단호한 규정 설명만 듣고 돌아선다. 그 차이는 감정이 아니라 결과로 남는다. 행정의 중립은 의도가 아니라 체감으로 평가된다. 아무리 공정하려 했다고 말해도, 시민이 불공정을 느꼈다면 그 행정은 이미 신뢰를 잃은 것이다.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공무원의 자세는 결국 시민에게 잘못된 학습을 남긴다. 조용히 말하면 손해를 보고, 강하게 항의해야 해결된다는 인식, 혼자 오면 무시당하고 여럿이 오면 달라진다는 경험이 쌓인다. 그 순간 행정은 질서를 만드는 시스템이 아니라 힘의 크기를 재는 공간으로 변한다. 이는 시민을 피로하게 만들고, 행정을 불필요한 갈등의 중심에 세운다.

공무원의 재량은 공익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재량이 사람에 따라 다르게 작동할 때, 그것은 공익이 아니라 편의가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태도가 조직 내부에서는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민원이 커지지 않으면 괜찮고, 항의가 없으면 넘어간다. 그 사이 조용히 불편을 감내한 시민의 경험은 기록되지 않는다.

공무원에게 요구되는 것은 완벽한 감정 통제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자신의 감정이 행정의 결과를 바꾸지 않도록 스스로를 점검하는 직업적 절제는 필요하다. 중립의 의무란 감정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감정 위에 원칙을 올려놓는 능력이다.

사람이기에 완벽할 수 없다는 말은 이해의 출발점일 수는 있지만, 면책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공무원의 자세는 결국 행정 전체의 신뢰를 갉아먹는다. 공무원은 ‘누구를 대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처리하느냐’로 평가받아야 한다. 시민이 공평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행정은, 아무리 절차를 지켰다 해도 제 역할을 다했다고 말하기 어렵다.